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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모의 ‘세종이야기’ 제34호] 세종실록을 읽으면 생기는 세 가지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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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6-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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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을 배우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로움이 있나요?”
지난달 강의가 끝난 뒤, 한 스타트업 CEO가 던진 질문이다. 문득 양혜왕이 맹자를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 곧 ‘우리나라에 이로운 말씀을 들려달라’는 <맹자>의 구절이 떠올랐다. 당시 맹자는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何必曰利 하필왈리]”라고 하여, 이익을 앞세우는 태도를 경계했지만, 나는 조금 다른 대답을 했다. 세종실록을 읽으면 얻게 되는 세 가지 이로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 젊은 CEO의 눈에서 절박함을 보았고, 그것은 지난 26년 동안 내가 세종실록을 거듭 읽으며 몸소 확인한 효용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의중을 읽어야 일이 된다

그 첫째는 말귀를 키워준다는 점이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겉으로 하는 말과 실제 의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말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움직였다가는 중요한 맥락을 놓치거나 엉뚱한 판단을 내리기 쉽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말의 표면을 넘어 상대의 의도와 방향을 읽어내는 '의중(意中) 독해력'이다. 세종실록 속 왕과 재상들이 주고받은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한마디 말 속에 담긴 의도와 계산, 그리고 국정의 방향을 읽는 훈련을 하게 한다.

1439년(세종 21년) 여름, 도승지 김돈의 경우가 좋은 예다. 세종은 병환 중인 형 효령대군을 위해 도성에 온 행호(行乎) 스님을 당분간 머물게 하겠다고 형에게 약속했는데, 언관들에게는 장차 산으로 돌려보내겠다고 벌써 말해 둔 터였다. 여기에 유생들의 반발까지 더해지면서 어느 한쪽의 약속을 지키면 다른 한쪽의 신뢰를 잃을 수 있는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 그때 김돈이 "산으로 보내겠다고 하셨지만 날짜까지 정한 것은 아닙니다. 우선 도성 가까운 대자암에 머물게 하다가, 선선해진 다음에 떠나가게 하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세종은 "네가 내 마음을 잘 아는구나. 네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계책을 정했다."고 했고, 결국 형과의 약속도 지키고 신하들과의 약속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세종실록 21년 4월 21일).

김돈은 “장차 행호를 산으로 돌려보내겠다”는 세종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병환 중에 있는 형의 바램을 들어주고 싶은 왕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렇다고 왕의 비위를 맞추는 아첨에 머문 것도 아니었다. 그는 국정을 중심에 두고 임금의 의중과 신하들의 명분을 함께 살릴 수 있는 제3의 길을 찾아냈다. 최고의 비서실장이란 윗사람의 말을 가장 잘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윗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가장 정확하게 이해하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세종실록에는 이처럼 말의 표면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뜻을 읽고,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최선의 해법을 찾아낸 사례가 무수히 등장한다. 실록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역사 공부를 넘어, 사람의 마음과 조직의 방향을 읽는 훈련을 하는 일이다.

그 둘째는 '겹눈'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겹눈이란 하나의 사안을 단선적으로 보지 않고,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바라보는 시야를 말한다. 어떤 정책이 처음 제안되고 추진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맥락과 이해관계의 충돌, 사람들의 속셈, 그리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변수까지 함께 읽어내는 능력이다.

겹눈으로 판단하라

잠자리의 겹눈이 수많은 작은 눈으로 하나의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듯, 리더에게도 여러 방향을 동시에 살피는 시야가 필요하다. 세종실록은 바로 그 점에서 탁월한 교과서다. 하나의 정책이 제안되고 논쟁을 거쳐 시행된 뒤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까지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옳아 보였던 정책이 실패하기도 하고, 사소해 보였던 반대 의견이 훗날 가장 중요한 통찰로 드러나기도 한다. 실록을 읽다 보면 한 사건을 하나의 잣대로 재단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여러 가능성을 함께 검토하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위 중반부에 논란이 된 사창(社倉)제도이다. 춘궁기에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뒤에 돌려받는 제도였는데, 여러 해 동안 갚지 못한 곡식이 쌓이면서 나라 창고가 비어 가고 있었다. 세종의 다음 물음에는 국정운영자의 고민이 담겨 있다. “묵은 빚을 한꺼번에 거두면 백성들의 원망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거두지 않으면 나라 창고가 비어 흉년이 들어도 백성을 구휼할 길이 없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세종실록 17년 11월 5일)

한쪽만 보면 답은 쉬웠다. 백성을 생각하면 탕감하는 것이 옳아 보였고, 국가를 생각하면 반드시 거두어야 했다. 그러나 세종은 어느 한쪽만 보지 않았다.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면서도 미래의 재난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빚을 거듭 탕감하면 언젠가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생겨 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까지 함께 내다보았다.

결국 세종은 원망을 감수하고 묵은 곡식을 거두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 결정은 곧바로 효과를 드러냈다. 이듬해 큰 흉년이 들었을 때 나라 창고에 비축해 둔 곡식으로 백성을 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도 "올해 백성들이 굶어 죽음을 면한 것은 이전에 곡식을 비축해 둔 덕분이다"라고 회고했다(세종실록 18년 9월 7일).

겹눈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눈앞의 어려움만 보는 것도 아니고, 먼 미래만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고통과 내일의 위험을 함께 살펴, 두 가지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능력이다. 세종실록은 이러한 입체적 사고를 끊임없이 훈련시켜 준다.

마지막 셋째는 말을 잘하게 된다는 점이다. 세종실록을 읽으며 가장 직접적으로 얻는 이로움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하는 능력이 길러진다는 데 있다. 역사 속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한마디가 상대와 조직, 나아가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직언이 필요할 때는 분명하게 말하고, 감정만 앞세워 상황을 악화시키는 말은 삼간다.

일이 되도록 말하라

세종실록에는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1439년 사헌부는 혹시 모를 재난에 대비해 실록을 여러 곳에 나누어 보관하자고 건의했고, 세종은 이를 곧바로 받아들였다. 그 결정 덕분에 임진왜란 때 전주 사고의 실록이 살아남아 오늘날 《조선왕조실록》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다. 반대로 1423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권희달은 "우리나라에서 바친 말은 본래 똥이나 싣던 말"이라는 경솔한 발언으로 외교적 물의를 일으켜 끝내 관직을 잃었다. 한마디 말이 역사를 살리기도 하고 국격을 추락시키기도 한 것이다.

실록을 읽다 보면 말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일이 되도록 말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세종은 즉위 초 "임금의 말은 한 번 몸에서 나가면 흘러내린 땀[渙汗 환한]과 같아 다시 거둘 수 없다."는 《주역》의 구절을 인용하며, 지도자의 말은 되돌릴 수 없음을 강조했다. 지도자의 말은 처음에는 가느다란 실처럼 보이는 말이라도 밖으로 나가면 거문고 줄처럼 쉽게 끊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는 것이 세종과 그 시대 사람들이 공유한 언어관이었다.

그래서 세종은 신하들에게도 먼저 충분히 듣고[詳聞 상문] 깊이 살핀 뒤에[熟察 숙찰] 말하라[諫言 간언]고 거듭 당부했다. 1439년에는 근거 없는 주장으로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고(세종실록 21년 4월 12일), 중요한 정책을 보고할 때에는 하나의 의견만 내놓지 말고 상·중·하의 여러 방안을 함께 검토해 아뢰라고 지시했다. 사실을 먼저 확인하고, 주장보다 대안을 앞세우라는 뜻이었다. 좋은 말은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이 아니라, 일을 이루기 위한 말이라는 점을 세종은 몸소 보여주었다.

허조는 이러한 원칙을 가장 잘 실천한 신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옳다고 믿는 일은 누구를 상대로도 굽히지 않았다. 재위 초 '총람(摠覽)-위임(委任)' 논쟁에서는 태종의 장인인 원로 대신 김점을 상대로, 왕이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기보다 유능한 인재에게 과감히 권한을 맡겨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고, 마침내 세종을 설득했다. 그러나 재위 중반 ‘수령고소금지법’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오랜 논의 끝에 세종이 절충안을 내놓자 "비록 제가 바라던 바는 아니지만 이 정도면 중용을 얻었습니다."라며 기꺼이 자신의 의견을 거두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보다 국정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더 중시했던 것이다. 훗날 그는 세종을 회고하며 "간언하면 끝까지 귀 기울여 들으셨고, 쓸 만한 의견은 반드시 시행하셨다."고 말했다. 세종 시대의 말하기 문화가 이 한마디에 응축되어 있다.

8월 27일 개강하는 <세종실록 아카데미>를 준비하며

최근 《선조실록》을 읽으며 임진왜란 직전 20여 년의 정치를 되짚어 볼 기회가 있었다.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이 세종실록을 더 깊이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임금의 의중을 읽되 국정이 앞으로 나아가도록 토론했더라면, 눈앞의 이해관계를 넘어 여러 가능성을 함께 살폈더라면, 자신의 말이 조직과 사회에 어떤 파장을 낳을지 한 번 더 헤아렸더라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는 비단 16세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던져지는 질문이다.

물론 세종실록의 가치를 말귀를 키우고, 겹눈을 갖추며, 말을 잘하게 되는 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세종실록은 무엇보다 사람을 깊게 만든다. 영혼을 살찌우고, 생각을 젊게 하며, 결정적인 순간마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판단하는 힘을 길러 준다. 2002년 처음 세종실록 강독을 시작한 뒤 25년 가까이 같은 책을 반복해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어제의 나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종실록은 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라 사람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리더십 교과서다. 그 공부를 함께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오는 8월 27일 새로운 <세종실록 아카데미>가 시작된다. 세종이 남긴 질문을 함께 읽고 토론하며, 말귀를 키우고 겹눈을 갖추고 일이 되도록 말하는 법을 함께 배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나의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종실록 덕분에 내 삶은 더욱 윤택해졌고, 내 영혼은 끝내 자유로울 수 있었다."
세종국가경영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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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 : 박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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