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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칼럼 - 세종, 나를 바꾸다 1] 나종천 이사장 : 암흑 속에서 마주한 빛, 세종의 길 위에서 새로운 사명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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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6-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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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의 어둠, 그리고 60년의 여정

열두 살, 세상이 온통 푸르고 찬란하게 빛나야 할 그 나이에 나는 불현듯 찾아온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실명(失明)이라는 청천벽력이 내 삶을 덮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60년이 넘는 세월을 시각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습니다. 빛을 잃은 소년이 노인이 되기까지의 여정은 매 순간이 보이지 않는 벽과의 사투였고, 세상의 편견과 차별, 그리고 배제에 맞서 싸워야 했던 고단한 걸음이었습니다.


그러던 내가 16년 전, 아무 연고도 없던 이곳 여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왜 하필 여주였을까. 당시에는 그저 삶의 물길이 이끄는 대로 흘러왔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6월 25일, 내 생애 아주 특별했던 한 강의를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여주로 오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음을, 영릉에 잠들어 계신 세종대왕께서 나를 이곳으로 부르신 깊은 뜻이 있었음을 말입니다.


두려움으로 마주한, 60년 전 나의 모습들

지난해 말, 나는 내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었던 '세종강사 오디션'에 출전해 감사하게도 강사 후보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25일, 여주 다함께돌봄센터 2호점에서 진행된 ‘세종같이공유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마침내 초등학교 아이들 앞에 강사로 서게 되었습니다.


평생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고백하건대 초등학생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것은 내 평생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강의를 앞두고 마음 한구석에는 짙은 두려움이 피어올랐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를 아이들이 무서워하거나 낯설어하면 어쩌지?’

‘역사와 장애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받아들여 줄까?’


무엇보다 내 마음을 가장 크게 뒤흔들었던 것은, 강의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의 나이가 바로 내가 처음 빛을 잃었던 ‘열두 살’ 무렵의 또래들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60년 전, 갑작스러운 암흑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나의 소년 시절이 아이들의 맑은 숨소리 위로 아른거리듯 겹쳐 보였습니다.


편견을 깨뜨린 아이들의 순수한 공감

그러나 막상 강의가 시작되고 아이들과 목소리를 나누는 순간, 내가 가졌던 막연한 두려움은 봄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시각장애인 강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다소 긴장하고 조심스러워하던 아이들의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안질 이야기, 그리고 백성을 위해 눈이 멀어가면서도 한글을 창제하신 이야기를 퀴즈와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자 아이들의 마음이 활짝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흡수력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순수했습니다. 장애라는 것이 한 사람을 규정하는 틀이 아니라, 그저 서로 조금 다른 삶의 방식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은 가슴으로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특히 2교시에 진행된 한글 점자 수업에서 아이들은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훈민정음의 과학적인 제자 원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한글 점자, 즉 송암 박두성 선생의 ‘훈맹정음’을 설명하고 직접 점자를 읽고 쓰는 활동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점칸의 고유 번호를 익히고 점필과 점판을 활용해 글자를 찍어내며, 한글이 가진 문자 체계로서의 위대함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그 현장을 지켜본 한 주민께서 “단순히 좋은 경험을 넘어, 서로 다른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아이들 안에서 샘솟는 것을 보았다”고 하신 말씀이나, 박현모 세종국가경영연구원 원장님이 “어릴수록 선입견이 쉽게 바뀐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배려를 배우게 된 것이 큰 성과”라고 평가해 주신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영혼 덕분에 오히려 내가 더 큰 위로와 희망을 선물 받은 시간이었습니다.


세종대왕, 시각장애인 선배가 남긴 사명

내가 세종대왕에게 깊은 관심을 두고 서적을 탐독하며 세종실록 강독에 참여하게 된 것은, 그분이 겪으신 육체적 고통이 나의 삶과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실록에 기록된 세종 23년(1441년, 세종 춘추 45세)의 기록을 보면 “두 눈이 흐릿하고 아픈 증세가 있은 지 10년이나 되었다... 한 걸음 사이에서도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겠고, 어두운 곳에서는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가 어렵다”고 하셨고, 이듬해에는 “왼쪽 눈은 보이지 않고 오른쪽 눈은 깔깔하여 보기가 어렵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이 시기 세종대왕의 시력은 비록 완전한 전맹은 아니었을지라도, 오늘날의 기준으로 본다면 중증 시각장애인 판정을 받고도 남을 만큼 극심한 상태였습니다. 이렇듯 외롭고 고통스러운 어둠 속에서도 왕의 직무를 다하셨고, 마침내 세종 25년(1443년, 세종 춘추 47세), 눈먼 성군(聖君)의 손끝에서 세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자 ‘한글’이 탄생했습니다. 세종대왕은 나에게 있어 시각장애를 극복한 최고의 선배이자, 삶의 영원한 나침반입니다.


세종대왕은 장애를 가졌음에도 왕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뿐 아니라, 시각장애인 예술가들을 위한 ‘관현맹’ 제도, 기우제를 지내던 ‘명통시’ 등 시대를 앞서간 장애인 복지 정책을 펼치셨습니다. 장애인들에게 단순히 시혜적인 물질을 베푼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뛰어난 능력을 발굴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당히 자립하도록 ‘생생지락(生生之樂·살아가는 즐거움)’을 실천하신 분입니다.


시각장애는 무언가를 할 수 없는 ‘결핍’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능력’이 될 수 있음을 세종대왕께서는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눈먼 세종대왕이 만든 빛나는 한글, 그리고 장애가 오히려 창조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는 이번 강의를 통해 아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갈 인생길에서 마주할 순경(順境)과 역경의 모든 순간마다 세종의 눈으로, 세종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지혜롭게 헤쳐 나가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인간 세종에게서 드러난 이 위대한 역사의 진실과 의미를 온 국민에게 알리는 일, 그것이 바로 시각장애의 몸으로 60여 년을 살아낸 나의 남은 사명이라 확신합니다.


세종강독 동문들, 그리고 세종같이공유학교 동료들에게 전하는 감사와 다짐

이번 강의를 통해 나는 내 사명의 첫 단추를 채웠습니다. 처음에는 두려웠지만,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과 따뜻한 손길을 느끼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많이, 더 널리 세상 밖으로 나아가 강단에 서고 싶다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편견의 벽을 허무는 일은, 바로 이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종같이공유학교’라는 멋진 장을 열어주시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깨뜨리며 함께 공동체의 가치를 구현해 가시는 박현모 원장님과 연구원 관계자분들, 그리고 늘 곁에서 든든한 학문의 길동무가 되어주시는 세종실록 강독 동문 여러분께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함께 걷고 있는 이 길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배우는 교실이 아닙니다. 세종의 정신을 이어받아 다양성을 존중하고, 배려와 공감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미래의 길입니다. 세종대왕이 불러주신 이 여주 땅에서, 내 남은 생이 다하는 날까지 손끝으로 희망의 빛을 찍어내며 여러분과 함께 세종의 비전을 널리 전파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나종천 (사)복지네트워크협의회 유어웨이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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