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의 겹눈이 수많은 작은 눈으로 하나의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듯, 리더에게도 여러 방향을 동시에 살피는 시야가 필요하다. 세종실록은 바로 그 점에서 탁월한 교과서다. 하나의 정책이 제안되고 논쟁을 거쳐 시행된 뒤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까지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옳아 보였던 정책이 실패하기도 하고, 사소해 보였던 반대 의견이 훗날 가장 중요한 통찰로 드러나기도 한다. 실록을 읽다 보면 한 사건을 하나의 잣대로 재단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여러 가능성을 함께 검토하는 사고가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재위 중반부에 논란이 된 사창(社倉)제도이다. 춘궁기에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고 추수 뒤에 돌려받는 제도였는데, 여러 해 동안 갚지 못한 곡식이 쌓이면서 나라 창고가 비어 가고 있었다. 세종의 다음 물음에는 국정운영자의 고민이 담겨 있다. “묵은 빚을 한꺼번에 거두면 백성들의 원망이 클 것이다. 그렇다고 거두지 않으면 나라 창고가 비어 흉년이 들어도 백성을 구휼할 길이 없다. 어떻게 하는 것이 옳겠는가?”(세종실록 17년 11월 5일)
한쪽만 보면 답은 쉬웠다. 백성을 생각하면 탕감하는 것이 옳아 보였고, 국가를 생각하면 반드시 거두어야 했다. 그러나 세종은 어느 한쪽만 보지 않았다. 당장의 고통을 덜어주면서도 미래의 재난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빚을 거듭 탕감하면 언젠가는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생겨 제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까지 함께 내다보았다.
결국 세종은 원망을 감수하고 묵은 곡식을 거두기로 결정했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그 결정은 곧바로 효과를 드러냈다. 이듬해 큰 흉년이 들었을 때 나라 창고에 비축해 둔 곡식으로 백성을 구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도 "올해 백성들이 굶어 죽음을 면한 것은 이전에 곡식을 비축해 둔 덕분이다"라고 회고했다(세종실록 18년 9월 7일).
겹눈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눈앞의 어려움만 보는 것도 아니고, 먼 미래만 바라보는 것도 아니다. 오늘의 고통과 내일의 위험을 함께 살펴, 두 가지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능력이다. 세종실록은 이러한 입체적 사고를 끊임없이 훈련시켜 준다.
마지막 셋째는 말을 잘하게 된다는 점이다. 세종실록을 읽으며 가장 직접적으로 얻는 이로움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분별하는 능력이 길러진다는 데 있다. 역사 속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자신의 한마디가 상대와 조직, 나아가 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먼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직언이 필요할 때는 분명하게 말하고, 감정만 앞세워 상황을 악화시키는 말은 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