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리의 유래와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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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참석자 모두에게 발언 기회를 주는 세종의 회의 방식
대표 사례:
1433년 2월 15일 ‘파저강 정벌 대토론’
세종은 참석자 모두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게 함 (각진 各陳)
영의정 황희를 포함해 총 23명이 발언
신하들이 사용한 용례:
세종의 회의 방식은 신하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줌
1443년(세종 25년) 7월 8일, 예조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올림:
“모든 관리로 하여금 가뭄의 원인과 그 해법을 말하게 하자"
[盡言 致旱所由 及 弭災之方]
세종은 이를 허락함
개념화한 연구자:
정윤재 교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주요 저서:
『다사리국가론: 민세 안재홍의 사상과 행동』 (백산서당, 1999)
개념의 전개:
박현모 교수가 진행한 <세종실록 강독>에서 ‘진언(盡言)’, ‘각진(各陳)’에 주목
이를 민세 안재홍의 철학 용어 ‘다사리’와 연결
민세 안재홍의 철학적 정의:
“하늘(하나)과 들(둘)이 씨(셋)를 매개로 생명을 낳고(넷),
하나의 생명도 포기하지 않고 다 살리는 것(다섯)이 다스림”
정윤재 교수는 이 철학에서 ‘다 살리는 것’을 톺아내어,
‘다 사리어’ 또는 ‘다 사뢰다’를 줄여 ‘다사리’라는 개념어로 정리
확산의 주체:
박현모 교수는 <세종실록 강독> 등 강의에서 ‘다사리’ 개념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
현장 적용 사례:
여주교육청 박형 장학관은 <세종실록 강독> 수업을 통해 '다사리'를 처음 배움
이후 중학교 수업에 ‘다사리 교육 토론’을 적용
그 성과를 정리하여 『다사리교육』(2024) 출간